헌법재판소의 5차 변론 기일이 다음주 화요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변론 기일은 윤씨 파면을 확정 지을 사실상 최후 변론이 되지 않을까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윤씨의 위헌적인 직접 지시를 일관되게 반복해서 진술하고 있는 핵심 증인 3인방이 증인으로 나서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돌직구 증언 앞에서 윤씨 일당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또 어떤 개그로 화답할지가 주목된다.
그럼 핵심증인들과 이들의 핵심 증언들에 대해서 미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진정한 보수를 보여주마."
저 대통령을 좋아했습니다. 시키는 것 다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체포 대상) 명단을 보니까 그거는 안 되겠더라구요.... 그런 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어디? 평양.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하는 기관이 어디? 북한 보위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정보계의 정점에 선 초엘리트이자 철저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육군사관학교(43기)를 졸업한 그는 엘리트 군인으로서 특전사 707특수임무대대 중대장을 역임하며 최정예 특수부대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이후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입문하면서 본격적인 정보 분야의 길을 걸었으며, 학문적 탐구를 병행하며 국제관계학(MA), 전쟁학(MA), 정치학(PhD)이라는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구축했다. 미국, 영국, 핀란드 등 세계적 명문 대학에서의 공부한 그는 외교와 안보에 걸쳐 두루두루 국제적 감각을 더욱 단련시켰다.
국정원 내에서 블랙요원으로 활동하기까지 한 그는 차근차근 계급을 상승하며 실무와 전략을 두루 경험했다. 이병기, 이병호 두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을 맡으며 조직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수행했고, 2017년에는 주영국 대사관 공사로 파견되어 외교와 정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국정원 대북특별보좌관을 거쳐, 2023년 제20대 국정원 1차장에 임명되며 국가 안보 전략을 총괄하는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이력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강한 국가관’과 ‘보수적 안보관’이다. 특수부대 출신으로 강한 조직력과 결단력을 갖춘 그는 정보전과 심리전, 대북 전략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된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군과 정보기관을 오가며 활동해온 그는, 문민 중심의 정보 개혁보다는 안보 중심의 정보 활동을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행보는 대한민국 보수 정보기관의 정통성을 계승하며, 흔들림 없이 국익을 지켜온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민주당 의원들의 그 동안의 정보에 따르면 그는 국정원 내 윤씨 측근으로 평가 받는 등 계엄이 일어나면 핵심종사자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고 여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국가관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로 만들겠다는 내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자신의 이름과 십수년 국가를 위해 헌신해온 평생의 명예를 걸고 내란 행위 고발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경력과 행보로 보자면,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기 국정원장 또는 제대로 된 대통령을 보좌해 대한민국 안보전략을 총괄할 외교안보수석으로 손색 없는 인물로 보인다.
2. 여인형 방첩 사령관 : “부하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싶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대한민국 군 정보 및 보안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육군사관학교(48기) 출신으로,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정보·방첩 업무를 총괄하며 군 내 보안 체계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게 된 것은 2024년 12월 윤씨 일당의 내란 시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국군방첩사령관으로서 정치인 체포, 정보 조작, 군 내부 감시 등의 계획을 지휘한 그는, 계엄이 실패하자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포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여인형은 계엄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기 전부터 사전 정지 작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9월에는 국군 주요 장성들의 프로필을 온라인에서 삭제하도록 조치했고, 10월에는 방첩사 내부에 전두환·노태우의 사진을 걸어두고 김재규의 흔적을 지우며 군 내부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는 비상계엄 발동 이후 계엄사령부의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될 예정이었으며, 2017년 계엄령 문건을 참고해 포고령 1호를 직접 기획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밤, 그는 방첩사 요원들에게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점거를 지시하고, 한동훈·이재명·조국 등 정치인들을 국군방첩사령부 지하에 감금할 계획을 세웠다. 또한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정치인들의 위치를 추적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홍장원은 이를 거부하며 “미친놈이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그러나 내란이 실패하자 이어진 국정조사에서도 모르쇠 작전으로 일관하였으나,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나는 계엄을 반대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계엄을 멈춰달라고 애원했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이 확보한 그의 메모에는 ‘반국가세력 수사본부’ 구성과 체포 계획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으며, 비상계엄이 발동되기 전부터 국회와 주요 기관에 투입할 방첩 요원들을 배치했다는 정황도 확인되었다.
결국 그는 12월 14일 구속되었고, 12월 31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되었다. 여인형의 사례는 군 정보기관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될 경우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3. 이진우 전 수도방사령관: "대통령이 발포 명령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48기) 출신으로, 수도방위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 합동참모본부 등 작전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특히 보병과 기갑, 과학화 전투훈련, 작전기획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전투력 운용과 군사 전략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그는 대한민국 수도방위를 책임지는 수도방위사령관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2024년 12월, 윤씨 내란 시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뒤흔든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수도방위사령부는 내외부의 어떤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 서울을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하지만, 이와 반대로 국가체제를 전복하는 내란을 주도하는 부대가 된 것이다. 이진우 사령관은 수도방위사 소속 특수부대와 군사경찰을 투입하여 국회를 무력 점거하는 작전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수호신 TF’라는 비밀 조직을 운영하며 계엄을 사전 준비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특히 국회 단전을 검토하고, 주요 시설 점거를 위한 전략을 계획하는 등 계엄이 단순한 비상조치가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설계된 친위 쿠데타였음을 시사하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시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국회에서 발포 명령이 내려졌다는 점, 비상계엄이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조치였다는 점을 인식한 그는 결국 모든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듯 하다. 국방위원회 증언에서 윤씨가 직접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작전 상황을 확인했으며,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진술했다. 공공의 적 전두환씨 마저 끝까지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그 발포 명령을 윤씨가 직접 지시했음을 밝힌 것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자신이 모든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윤씨 일당을 도와 내란을 도모했던 ‘작전통’이자 수도방위의 최고 책임자가, 이제는 군이 더 이상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진실을 증언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하루 빨리 내란 우두머리가 공식적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고, 또 응당한 법의 처분을 받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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